프랑스에서 1950년대 일어났던 영화운동 '누벨바그' 는 새로운 물결이라는 뜻입니다. 당시 누벨바그 운동에서 선두에서 서서 열심히 활동했던 감독이 있는데 그분은 바로 아녜스 바르다. 이 분과 나이 55년 차이가 나는 손자뻘 되는 사진가 JR 이 작은 포토트럭을 타고 프랑스 시골마을을 다니면서 그 지역에서 잊혀진 사람들을 찾아서 인터뷰하고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을 크게 인쇄해서 건물벽에 설치하는 과정을 다큐 영상으로 남겼는데, 이 영화가 주는 은근한 매력과 영감을 여러분과 공유해보겠습니다.
줄거리 및 의미의 재창조
아녜스 바르다 감독과 사진가 JR 은 시골마을을 돌아다니면, 그 지역의 잊혀진 사람들의 흔적을 찾습니다. 폐광촌, 염소농장, 항만,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를 찾아가서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퍼포먼스 이벤트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두 사람이 재미있게 여행을 다니면 사진촬영하는구나 하는 정도로 밖에 인식하지 못했죠. 그렇지만, 영화를 보면서 점점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 지역에서 잊혀진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 올립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사진 속에 담겨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추억속에 묻혀버린 스토리를 찾아서 회복시키는 것이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평범하게 살았지만, 자신의 존재가 의미있다는 사실을 재인식하게 되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그 공간도 다시 생명을 불어넣게 되는것이죠. 저는 이 기획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인식의 재설정을 통해서 공간이 새롭게 창조되듯이, 한 사람의 인생도 과거의 추억을 새롭게 재인식함으로써 현재의 나의 정체성을 새롭게 설정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렇잖아요. 과거에 억울하고 분하고, 속터지는 일이 있어서 매번 괴로워하고 분을 삭히고 있으면 뭐하나요. 그 시절에 왜 그런 행동을 했는데, 그런 선택을 하게된 이유를 본인 스스로 충분히 납득을 하게되면, 과거의 추억이 새롭게 바뀌고 오히려 그 의미가 더 돋보일 수 있습니다. 과거가 재인식되면서 오늘의 내가 바뀌게 됩니다. 지금까지 자책하며, 자신의 단점으로만 알던 부분이 장점으로 바뀌게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미래가 바뀝니다.
다시 영화로 가보자. 여행의 끝에 아녜스 바르다는 오랜 친구 장 뤽 고다르를 만나러 가지만, 아쉽게도 그는 끝내 바르다를 만나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유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말못할 이유가 있었겠지요. 세월이 흘러 아녜스 바르다 감독은 고인이 되셨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을 보면서, 살아가는 것, 인생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만났던 수 많은 사람들, 세월이 흐르면서 지나쳐왔던 수 많은 날들 속의 나. 지난 추억 속에 나라는 인간을 다시 재인식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요즘 마음이 좀 힘든데, 이렇게 마음이 복잡할 때 이 영화를 보면서 살아가는 것, 사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복원의 예술, 인식의 재창조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공간 속에 있던 이야기는 휘발해버리고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합니다. 당사자들과 그 이웃들이 소소하게 기억할 수 있겠지만, 점점 그들 또한 추억속으로 사라져갑니다. 이 영화는 평범한 것, 일상적인 것의 소중함, 그리고 한 개인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인식하며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알려줍니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하루동안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과연 몇번 할까요?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싫어하는 것,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 수많은 생각과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서 추억을 만듭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추억은 사라지고, 얼굴에는 주름만 남게되죠. 아녜스 바르다 감독과 JR 은 그 사람들의 얼굴을 촬영하여, 그 사람들의 옛추억과 이야기를 찾아올립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기록영화가 아니라, 복원의 미학을 보여줍니다. 이 개념은 앞에서도 살짝 얘기했지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와 개념이 비슷합니다. 옛 과거의 시간에 영향을 주게 되면, 현재에 영향을 주고, 그게 다시 미래에도 영향을 준다는. 설명하고 보니, 영화 테넷하고도 비슷하네요. 역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시간의 흐름을 3차원으로 내려다보면서, 시간을 이용해서 스토리를 편집해서 삶을 창조하는데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다시 영화로 돌아오죠. 이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주목받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을 벽에 붙이는 순간 그들의 삶은 새롭게 재조명됩니다. 죽었던 공간도 새롭게 생명을 불러일으키죠. 저는 이 과정을 보면서, 인식을 재창조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로운 행위인가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바라다 감독은 사라져가는 것들에 새롭게 생명력을 불어 넣습니다. 이 영화는 사라져가는 것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통념을 깨고 새로운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사람을 새롭게 대하게 해줍니다. 예술이란게 이런거죠. 지나간 세월 속에 나이테처럼 쌓여있는 경험들, 이야기를 얼굴에 담아서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우리들 살아온 세월 속에 찍은 사진들을 꺼내서 우리도 비슷한 작업을 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단순히 어린시절 사진만 보여주는게 아니라, 그 시절에 왜 그런선택을 했는지, 무엇이 가장 좋았는지, 무엇이 가장 싫었는지를 표현하고,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면서 사회속의 한 사람으로서 자존감을 회복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마무리 정리
처음에는 오래된 영화감독과 젊은 사진작가의 로드무비 정도로 생각했지만, 영화를 다시 생각해보니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의미의 재창조인것 같습니다. 팩트를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진실은 다르게 바뀔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자신의 인생의 추억을 어떻게 재인식할지, 어떤 방법으로 팩트를 재창조할지 고민해보는 것도 흥미로울것 같습니다. 지금 이순간, 마음이 불편하고 괴로운 사람들이 있다면 자신의 과거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게 사진을 꺼내놓고, 왜 그시절에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 선택이 오늘의 나에게 주는 의미를 새롭게 재창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영화, 로드무비 같지만, 참 괜찮은 영감을 주네요.